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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작가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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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작가님

Aboutoboe 2023. 1. 15. 19:47

-한 줄 요약-
시는 삶이었고, 그 시는 그가 쓰고 있다.

저자: 김연수
출판사: 문학동네


-기억에 남는 구절- (2~3구절)

p31. "이건 마치 항상 기뻐하라고 윽박지르는 기둥서방 앞에 서 있는 억지춘향의 꼴이 아니겠나. 그렇게 억지로 조증의 상태를 만든다고 해서 개조가 이뤄질까? 인간의 실존이란 물과 같은 것이고, 그것은 흐름이라서 인연과 조건에 따라 때로는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며 때로는 호수와 폭포수가 되는 것인데, 그 모두를 하나로 뭉뚱그려 늘 기뻐하라, 벅찬 인간이 되어라, 투쟁하라, 하면 그게 가능할까?"

 

p38. 이제 인생은 매사에 벨라에게 질문을 던졌다. 인생의 질문이란 대답하지 않으면 그만인 그런 질문이 아니었다. 원하는 게 있다면 적극적으로 대답해야 했다. 어쩔 수 없어 대답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었다. 세상에 태어날 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그러므로 그건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만 했다. 설사 그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일지라도. 벨라는 호숫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섰다.

 

p85.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는 것, 어떤 시를 쓰지 않을 수 있는 것,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었다. 상허의 말처럼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볼 뿐 거기에 뭔가를 더 덧붙이지 않을 수 있을 때,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1958년 북한의 사람들에게 자유가 전혀 없었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들은 들으라는 대로 듣고, 보라는 대로 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는 대로 말해야만 했다.

 

 p165.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나요? 전쟁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평화를, 상처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회복을 노래할 수 있나요? 전 죽음에, 전쟁에, 상처에 책임감을 느껴요. 당신 안에서 조선어 단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 죽음에 대해 당신도 책임감을 느껴야만 해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게 시인의 일이에요. 매일매일 세수를 하듯이, 꼬박꼬박.

 

 p235. "내가 붓을 가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오." 라는 말을 몇번이고 되풀이했다. 그는 그 붓으로 세상의 권력에 맞설 수 있다고 믿었고, 그때는 기행도 그말에 동의했다. 자신들이 언어를 쓴다고만 생각했지, 자신들 역시 언어에 의해 쓰이는 운명이라는 것을 모를 때의 일이었다.

 


-끝맺음-

백석 시인에 대해 사실 잘 모른다. 그렇기에 기행이 누구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전혀 와닿지 않았다. 백지 상태에서 소설을 읽었을 때 마치 검은 도화지에 스크래치를 내서 색을 불어넣는 시인이라고 느꼈다. 시는 삶이었고, 그 시는 그가 쓰고 있는 중이다.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그 시로 인해 또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졌다. "일곱해의 마지막"이라고, 나와 같은 독자는 오늘 또 다른 세상을 만났다. 그렇기에 여전히 그의 시는 세상을 창조하는 중이다. 우리들의 마음에서, 생각에서, 그의 삶이 만들어내는 세상은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보고, 거기에 뭔가를 더하지 않아도 온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