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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작가님 본문
-한 줄 요약-
'미정'
저자: 김연수
출판사: 문학동네
주인공: 카밀라
-기억에 남는 구절- (2~3구절)
p44. 나는 그녀가 말하는 상식에 대해서 생각했다.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과거가 단일한 게 아니라 여러 개다. 가족이 기억하는 유년과 친구가 기억하는 유년과 자신이 기억하는 유년이 모두 다르리라. 그러므로 그들은 그중에서 가장 합당한 과거를 선택하면서 지금의 자신에 이르렀으리라. 이치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따지는 건 그렇게 선택할 수 있는 과거가 여러 개인 사람에게나 가능하지 않을까? 돈이 없어서 며칠 동안 굶고 다닌 사람에게는 길에 굴러다니는 동전 한 닢도 너무나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단 하나의 과거도 없는 내게는 아무리 터무니없고 불합리하며 비이성적일지라도 사소한 단서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하찮은 사실 하나를 지키기 위해 상식적 세계 전체와 맞서야만 하는 순간도 찾아오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p72. 그다음 일년 동안, 그는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는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의 가장 낮은 밑바닥보다 더 어두운 곳에서 온몸으로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거기서는 자신에 대한 혐오도, 삶에 대한 분노도 있을 수 없었다. 그저 눈앞이 캄캄할 뿐. 삶의 기술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사람처럼,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불법 체류자의 신세로 그는 전락했다.
p88. 영화나 드라마에서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이야기의 진실을 찾아 어둠의 핵심까지 들어가는 캐릭터를 볼 때마다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저들은 왜 저토록 간절하게 진실을 추구하는 것일까? 공익을 위해서? 스스로 충만한 삶을 원하니까? 공명심 때문은 아닐까? 이제 내가 그런 입장이 되어보니 중요한 건 진실 그 자체이지, 개개인의 삶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그들의 욕망은 진실의 부력일 뿐이다. 바다에 던져진 시신처럼, 모든 감춰진 이야기 속에는 스스로 드러나려는 속성이 내재한다. 그러므로 약간의 부력으로도 숨은 것들은 표면으로 떠오른다. 진실은 개개인의 욕망을 지렛대 삼아 스스로 밝혀질 뿐이다.
-끝맺음-
짜임새가 완벽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카밀라를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바다를 들여다 보는 것은 누구일까. 독자일까?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 휘몰아치는 파도를 뒤로하고 깊은 바다 속에 잠겨 이러저리 흘러가는 대류를 타고 진실이 자그만한 부력으로 떠오를 수 있도록. 글 밖의 시간을 내가 찾아낼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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